오늘의 영화는 한재림 감독의 <관상>입니다.
사극소재로는 약간 생소하다고 할 수 있는 역학에 대한 중심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한재림 감독은 충무로의 상업영화감독 중에서도 감각적인 연출력과 재치 있는 시나리오로 비평, 흥행을 전부 챙기는 감독입니다.
2005년 데뷔작 <연애의 목적>으로 신인감독상과 각본각을 수상하며 혜성같은 등장을 보여주었습니다. 데뷔작으로만 7개의 상을 휩쓰는 기염을 토하며 등장한 이 감독은 이후 <우아한 세계>로 조폭 누아르를 찍는가 하면 이번에는 <관상>을 통해 사극을 보여주었습니다. 장르를 구분하지 않는 도전만으로도 이미 자신의 스펙트럼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위의 영화 모두 흥행실적이 좋은 영화들입니다. 물론 저도 재밌게 보았습니다.
1. 출연진
메인 주연으로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조정석, 이종석, 김혜수가 스크린을 채웁니다. 조정석, 이종석을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은 이미 존재만으로도 설명이 필요없는 간판급 배우들이고, 조정석, 이종석 또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 나아가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송강호는 한재림감독과 이미 한차례 <우아한 세계>를 함께한 바가 있어 역시 여러 감독에게 사랑받는 배우임이 틀림없습니다.
2. 역사적 배경
실제 역사에 기반한 사건중 계유정난(1453년)을 기반으로,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기 위한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입니다. 이런 사건에 앞서 이들 사이에 가상의 인물인 관상가가 개입되었다는 상상력을 가미한 사극 영화가 되겠습니다.
3. 줄거리
천재 관상가 내경(송강호)은 그의 처남 팽헌(조정석)과 아들 진형(이종석) 셋이서 산속에 칩거 생활을 합니다. 역적의 집안으로 낙인되어 자그마한 자리에도 오를 생각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체념한 듯 산속에서 보잘것없는 붓을 팔며 근근이 생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들 진형은 출세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책을 읽고 글공부를 합니다. 내경과 갈등을 가지면서 까지 글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착하지만 아직은 어린 청년입니다.
어느 날 한양에서 온 기생 연홍(김혜수)의 제안으로 기생집에서 관상을 보는 일을 하게 됩니다. 아들 진형은 관상을 보는 아버지가 못마땅하지만 결국 자신도 꿈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내경은 연홍의 기방에서 계속되는 관상노동(?)에 시달리는 날을 보내다, 당시 왕이었던 문종의 최측근 김종서의 수하가 되어 일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나랏일까지 맡게된 내경은 문종의 부름을 받고 자신의 권력을 탐하는 자가 있는지 걸러내라는 명을 받습니다. 내경은 의심되는 모든 인물들을 확인한 바, 수양대군에게서 강렬한 권력의 의지를 읽어냅니다. 그는 남을 짓밟아서라도 왕이 되려는 얼굴을 갖고 있었습니다.
내경의 주업무는 과거를 통해 내시가 되고자 하는 이들의 관상을 보고 등락을 결정짓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아들 진형이 과거에 들어 입궁하고자 시험에 드는 광경을 보고야 맙니다. 내경은 늘 천치 같다고 생각하는 아들이 걱정되는 마음에 다그치지만, 이내 대견한 마음을 갖고 응원해 줍니다.
문종이 서거하고 그의 어린 아들이 즉위를 앞두고 있는 상황, 내경의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감지한 수양의 수하들이 그를 미리 제거하기 위한 계략을 펼치오나 실패로 돌아갑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내경은 김종서와 함께 새로 즉위한 어린 단종에게 수양의 모략에 대해서 충언하지만 관상이라는 것이 말장난이라고 여기는 단종은 그들의 충언이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내경은 어쩔 수 없이 수양의 얼굴에 그림을 그려 넣는 술수를 계획합니다. 그의 이마에 돼지피를 새겨 관상서적에 나오는 위험한 역모를 꾸밀 관상으로 만들어 단종의 선택을 돕기 위함입니다. 단종은 수양과의 대화 중 비친 그의 얼굴에서 역모의 표식을 알게 되었고, 이미 궁 안에 수양의 수족들이 깔려있는 것까지 알아차렸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미 수양이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단종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당장 숙부를 재명하고 그의 모든 불법적 권력을 끌어내려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형이 올린 상소문에 내경을 부르는 황표정사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오해를 만드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일로 진형은 김종서의 지시로 인해 두 눈을 잃게 됩니다. 사건을 알게 된 진형의 삼촌 팽헌은 김종서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낙담하며 수양을 찾아갑니다.
단종이 수를 쓰기 전에 위험함을 알리고, 권력 정리가 끝나면 자신들을 보살펴 달라는 간청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에 수양은 김종서를 찾아가 죽입니다. 그리고 궁을 점거하고 단종을 폐위시킵니다. 그리고 즉위하는 과정에서 내경의 아들 진형의 목숨까지도 가져갑니다. 사실상 끝까지 자신의 편에 들지 않은 내경에 대한 죗값을 아들의 목숨으로 가져간 것입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후 다시 칩거생활로 돌아간 내경과 팽헌을 수양의 수하 한명회가 찾아옵니다. 내경은 자신의 관상력이 아무 의미 없는 것임을 읊조리면서도 한명회를 보며 목이 잘릴 상이라고 단언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4. 총감상평 : 관상학의 허와 실
이 영화의 중심 소재는 관상이지만 재미있게도 인물들의 첫 등장씬에서는 얼굴이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김내경과 김종서는 뒷모습, 수양은 아예 발만 보여주며 그들의 몸짓 일부 만으로도 어떤 인물인지 짐작하게 하는 연출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기법자체는 흔한 방법 중 하나이겠지만 영화의 중심 소재가 관상인 만큼 이러한 기법은 오히려 영화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복선과 같은 설정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극 중 내경도 마지막에 결국 자신의 관상학적 능력이 유명무실함을 고백하며 참담한 심정을 비칩니다. 그의 관상학이 통했더라면 정작 자신의 아들인 진형의 죽음과 처남인 팽헌의 목소리까지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면서도 여전히 관상을 통해 사람을 내다보는 내경은 그 인물 자체가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마지막에 세상구경을 하며 끝없는 바다를 바라보는 내경의 표정은 어떤 설명이 어려운 아득한 얼굴을 한채 끝이 납니다. 이대로 생을 마감하려 할 것 같기도 하면서, 훗날을 위한 강렬한 다짐을 하고 있는 듯도 합니다. 그의 마지막 얼굴에서 읽히는 의미들이 상반되어 혼재된 것처럼 사람의 관상도 시시각각 변할 뿐, 관상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것 아닐까 생각하며 글을 마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