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가끔은 그런 신념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신념만큼 믿는 사람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될 때입니다.
오늘 이야기 할 영화는 <신세계>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다룬 영화들의 감독인 박훈정 감독의 장편 영화입니다. 개봉한 지는 꽤 됐지만, 여전히 명대사와 걸출한 악역을 배출시킨 명작입니다. 여러 차례 비슷한 설정의 영화들이 있었습니다만, 조폭에 잠입한 경찰 영화 중에서는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 출연진
이정재는 조폭에 잠입한 경찰 이자성역으로 나옵니다. 경찰로 부임되고 얼마돼지 않아 특수임무를 맡게 되었고 그것이 조폭으로 잠입하는 계기가 됩니다. 자신은 경찰이지만 정체성의 딜레마를 겪게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자성을 조폭으로 만든 장본인은 경찰수뇌부, 강형철 과장으로 최민식 배우가 맡았습니다. 그는 조폭이 운영하는 그룹 골드문을 자신의 뜻대로 휘어잡기 위해 이자성을 투입시켜 골드문 일당들을 고립시켜 나갑니다.
황정민은 이자성의 친형과 같은 조폭 동료이자 선배로 나옵니다. 정청이라는 화류계 출신 인물로 호탕한 성격을 가졌으면서도, 권력이나 물질적인 욕심이 없는 조폭이라 보기에는 다소 물욕이 없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2. 줄거리
골드문 그룹의 수장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그룹 회장자리를 두고 이사회가 열립니다. 회장자리에 거론되는 두 인물은 골드문 서열 3위로 정청과 이중구(박성웅)입니다. 서열 2위인 장수기가 있었지만 그는 조직 내 세력이 부족하여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정청과 이중구, 이 둘은 같은 골드문 소속이지만, 서로 다른 조직 출신으로 계보를 놓고 앙숙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경찰 역시 골드문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경찰의 이번 프로젝트는 골드문 회장의 후계자 자리에 직접 개입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잠입한 경찰 이자성은 새로 개편된 조직정보를 경찰 정보원 신우(송지효)에게 넘깁니다. 6년째 자신의 신분을 감추며 불안 속에서 아슬아슬한 임무를 수행하는 자성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였습니다. 머지않아 끝날 것만 같던 잠입 임무가 연장된다는 말을 듣고, 격분한 채
강 과장이 있는 실내 낚시터를 찾아갑니다. 자성은 강과장에게 격노하여 약속된 임무 종료를 촉구하지만, 강 과장은 대수롭지 않게 임무 연장을 종용할 뿐입니다.
정청은 다시 중국 출장길에 오르고 남아있는 자성에게 회사일을 잘 부탁한다며 연신 너스레를 떱니다. 자성이 흘린 정보로 정청의 출국길을 파악하고 있던 강과장 일행은 입국심사 중인 정청을 취조합니다. 강과장은 정청에게 골드문 관련하여 수집된 정보를 보여주며,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정청에게 이중구의 자료를 넘겨줄 것을 요구합니다.
정청은 골드문의 예민한 정보까지 경찰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자, 강 과장에
대한 정보를 뒷조사하기 시작합니다.
한 편, 이중구는 앞으로 열릴 이사회의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조직 내 다른 계파 서열들을 관리하기에 앞섭니다. 중구는 다른 조직과 계파에는 아주 배타적이고 적대시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은 아끼고 챙기는 모습을 보입니다. 정청은 자성에게 말도 없이 귀국하여 다시 강 과장을 독대합니다. 중국식 과자 월병을 가장한 달러뭉치를 건내며, 자신들의 일에 개입을 멈춰달라고 하지만, 강과장은 가방째 내팽게 치며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모습을 보입니다. 정청은 계속해서 강과장을 뒷조사합니다.
이중구의 재범파 일행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레스토랑에 경찰이 들이 닥칩니다. 강 과장은 직접 가져온 혐의들을 가지고 이중구를 체포합니다. 이중구는 면회온 정청에게 어김없이 반감을 드러냅니다. 그가 자신을 집어 넣었다고 근거없는 의심을 하고있는 중이었습니다. 중구의 이런 근거없는 의심은 곧 확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강과장이 자신과 독대를 하는 정청의 사진을 이중구에게 보여주며 이간질을 시킨 것 이엇습니다. 중구는 경찰의 비열한 농간을 알면서도 정청에 대한 감정이 식지 않았고 결국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정청은 조선족을 고용하여 신우를 습격합니다. 해커를 이용해 강과장 라인을 캐내었고, 강 과장과 신우의 관계를 파악한 것이었습니다.
정청은 자성을 호출하여 부두 근처의 창고에서 조우합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자성은 얼굴에서 긴장을 지우지 못합니다. 정청은 자성의 바둑선생으로 위장한 신우를 보여주며, 경찰인 것을 알고 있었느냐고 묻지만 자성은 반사적으로 몰랐다고 말합니다. 정청은 계속해서 해커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여주며 자성을 궁지에 몰아넣는 듯하다가, 조직원 중 한 명은 석무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놀란 자성은 정청이 준 자료를 보고 한 번 더 놀랍니다. 자신조차 몰랐던 조직 내 위장 경찰이 또 있었던 것입니다. 강 과장이 자성을 감시하기 위한 일환으로 다른 경찰을 잠입시켰던 것입니다.
자성은 신우 마저는 조직의 손에 불명예스럽게 죽지 않게 하도록 총을 탈취해 신우를 직접 처리합니다. 석무는 정청의 손에 의해 잔인하게 목숨을 거둡니다. 자성은 자신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의아했지만, 이내 강 과장을 찾아가면서 상황을 파악하게 됩니다. 정청이 중국 해커를 고용해 경찰 조직 일당을 모조리 파악했고, 그곳에는 당연히 이자성의 정보도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정청이 살려두었다는 것을.
그리고 경찰에서 정청과 이중구를 밀어주는 것이 아닌, 서열 2위 장수 기를 밀어주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들의 세력이 강하여 경찰 조직과 협력할 생각이 없는 정청과 이중구 조직을 서로 이간질하여 인수분해시키고,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한 장수기를 앞세워 회장으로 추대하려는 작전이었습니다. 그 러닝메이트로 이자성을 붙여줄 계획이었고요. 눈앞에서 경찰 동료 두 명의 죽음을 목격한 자성은 더 이상 못하겠다며 멈추어달라고 강과장에게 애걸합니다. 하지만 강과장은 이제 더이상 물러설 수가 없으며 정청도 곧 정리가 될 것이니 이자성에게 골드문을 직접 접수할 것을 종용합니다.
강 과장의 말대로 이중구의 재범파 조직원들은 정청을 습격했고 정청은 심각한 부상을 당한채 병원으로 이송됩니다. 재범파의 칼은 자성의 아내에게도 향했지만, 이미 선수를 치고 있던 경찰들에 의해 제압됩니다. 하지만 자성의 아내는 너무 놀란 나머지 갖고 있던 아이가 유산되고 맙니다. 유산 소식을 듣기 전 자성은 정청의 병실에서 자신의 신분을 정청이 알고도 살려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정청이 직접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독하게 선택하라고 조언을 합니다. 그리고 숨을 거둡니다.
유산 소식과 함께 친형 같았던 정청을 잃은 이자성은 더 이상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경찰로서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고자 했던 그는 경찰 조직으로 부터 너무나 많은 희생을 강요당했고, 자신에게 애틋했던 인물들까지 잃거나 지울 수 없는 아픔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자성은 정청이 남긴 서랍 속 짝퉁시계와 자신의 신원증명서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게 됩니다.
이중구는 출소를 하지만, 그를 보좌하러 온 부하는 아무도 없습니다. 결국 남아있는 자성의 조직원들로 인해 최후를 맞이합니다. 정청과 이자성이 없어진 골드문은 장수기가 회장자리로 추대될 것으로 확정시되었으나, 이사회 당일, 이자성을 습격하려던 장수기가 오히려 습격을 당하면서 물거품이 됩니다. 결국 흑화 된 이자성은 자신이 단독으로 회장자리에 올랐고, 자신이 경찰신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강 과장과 경찰 조직 수뇌부를 사살합니다.
이자성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며 정청이 남긴 짝퉁 시계를 차고 마지막 담배연기를 뿜으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3. 세 사람이 꾸었던 신세계.
영화의 제목처럼 등장인물 간 서로가 꿈꾸는 신세계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강 과장은 조직을 자신의 수족처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권력이었을 겁니다. 정청의 돈가방도 뿌리치고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굳은 신념에서 나오는 행동을 분석해 보면 유추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반면, 정청에게 신세계는 묵묵히 자신의 업을 다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중구를 충분히 제거할 수 있는 기회에도 경찰에게 협력하지 않으려 하고, 조폭으로서 자존심을 지키려고 합니다. 돈이 많지만, 짝퉁 선글라스와 시계를 선물하는 등 겉모습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과 모든 조직원이 패용하는 골드문 배지를 안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물욕과 권력욕조차 없어 보입니다. 다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며 자신의 수하에 있는 조직원들에게 넉살 좋게 구는 큰 형님의 모습을 할 뿐입니다. 이 둘의 신세계는 결국 꿈으로만 남게 됩니다. 하지만 주인공 자성의 신세계는 처음엔 주어진 임무를 명예롭게 소화하는 경찰이었을 테지만, 마지막에 흑화 된 자성은 경찰을 오히려 공격하고 조직의 우두머리에 앉는 방법을 택합니다.
영화 내내 담배를 입에만 물고 피우지 못하다가 끝내 마지막에 흑화 된 자성이 연기를 내뿜는 것을 보면,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어쩌면 조직으로서의 정체성이 처음부터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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