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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조선 최초 궁중광대극의 결말

by 우적우적 2023.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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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는 왕의 남자입니다. 평소 사극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본 걸작들을 골라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왕의 남자>를 처음 봤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들과 영화관에 가서 직관을 하였는데 그때가 고등학생이니 세월이 한참 지났습니다. 감명 깊게 본 영화 한 편일지라도 그 여운은 꽤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영화 한 편이 이 정도인데, 어머니에 대한 비극적 기억을 가진 연산군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주인공인 광대들보다도 더 몰입이 되는 이유가 분명 있습니다. 감독인 이준익 님이 어떻게 그 부분을 파헤쳐주셨는지 함께 알아봅시다.

 

1. 이준익 감독

이준익 감독님은 우리나라 대중 영화 감독으로 작품성과 흥행까지 사로잡는 감독 중 하나입니다. 1993년 <키드캅>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 없을 겁니다. 저도 어렸을 적, 정태우와 김민정 배우가 아역으로 국민들께 각인된 영화이면서, 스타덤에 오르게 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데뷔를 하였고, 이후 박중훈, 안성기의 <라디오 스타>, <황산벌>, 박정민, 강하늘의 <동주> 등으로 관객들의 호응을 받는 영화감독입니다.

 

2. 출연진

감우성 배우는 대담한 성격의 광대로 등장합니다. 천한 신분들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불의에 맞서는 전형적인 거친 인물 중 하나입니다. 동료인 공길을 매우 아낍니다.

이준기는 동료 광대인 공길의 역을 맡아 이번 영화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입니다. 가녀린 외모에 여자보다 고운 라인을 가진 청년이 되어 숱한 남자들의 성착란(?)을 일으키는 인물입니다.

연산군으로 등장하는 정진영 배우는 대표적인 폭군으로 등장하지만, 그 이면에 숨은 처연한 감정을 보이기 위해 창백한 용포를 입고 등장합니다. 굵은 선의 인상파 배우답게 왕의 역할을 아주 잘 소화해 내었습니다.

연산군의 후궁으로 유명한 장녹수는 강성연 배우가 맡았습니다. 의심의 여지없는 찰떡 캐스팅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녀는 공길을 경계하는 인물입니다.

 

3. 줄거리

장생과 공길은 줄타기가 장기인 광대들입니다. 그들은 광대패에 속해 있었는데 그 우두머리들이 공길을 성상납시키고 밥벌이를 하는 것을 분하게 여긴 장생이 그만 우두머리를 죽이고 맙니다. 충격을 받은 둘은 맹인 연극을 하며 서로를 의지하고 한양으로 올라가길 결심합니다.

 

한양에 도착한 둘은 저잣거리에서 벌어지는 광대판에 난입합니다. 이미 판을 벌리고 있는 광대 일당(?)들을 자신들의 재주넘기로 제압하고, 그들과  왕을 풍자한 놀이를 계획합니다. 계획은 성공적이었고 많은 구경꾼들의 엽전세례에 정신을 놓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다 환관 김처선에게 발각되어 왕을 모욕했다는 죄명으로 의금부에 끌려갑니다.

사정없이 매질을 당하던 중, 장생은 왕을 웃겨 보일 것이고, 왕이 웃는다면 모욕이 아니라며, 왕 앞에서 광대극을 벌이겠다고 요청합니다. 만약 실패한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란 처선의 엄포에도 장생은 광대 일행들을 향해 어차피 살판 아니면 죽을 판이라며 종용합니다. 그렇게 왕을 풍자하는 놀이를 당사자인 왕 앞에서 벌이게 되었지만 그들은 너무 긴장한 탓에 실수를 연발하고, 연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공길의 등장과 함께 장생과의 합에서 그의 애드리브를 본 연산군이 폭소를 하며 상황은 반전됐고, 이 광대들을 궁 안에 두고 내킬 때마다 즐기겠노라고 어명을 내립니다.

 

하루아침에 궁 안에서 호위호식을 하게된 세상 가장천한 광대들. 이들을 본 신하들은 천한 광대들을 신성한 궁안에 들여놓는 연산군에게 항소합니다. 법과 정도에 얽매여 사는 것이 왕이 맞느냐는 연산군의 하소연에 처선은 광대들을 이용하여 중신들의 기강을 다잡을 방법을 도모합니다.

 

처선은 장생에게 중신들의 반대를 들먹여 입궁을 번복하는 듯 자극하여 왕도 갖고 놀았는데 중신은 왜 못 가지고 노느냐라며  광대들을 종용합니다. 이미 왕을 가지고 놀아 한자리까지 얻은 광대들은 두려울 것이 없었고, 전국 재주 있는 광대들까지 면접하여 중신들을 저격하는 연극을 벌입니다. 연산군은 시종일관 즐거워하지만, 중신들은 불편해하는 심리를 숨기지 못합니다. 흥이 오른 연산군은 중신들에게 직접 술을 하사하던 중, 그들의 심리를 꿰뚫고 불안에 떠는 중신을 추궁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두려움에 자신의 매관매직을 실토하자 연산군은 분노하여 그를 당장 파직시키고 전재산을 몰수, 그의 손가락을 잘라 조정 대신들에게 돌려가며 보라는 명을 내립니다.

 

자신들의 연극이 감당할 수 없는 파장으로 번지자 광대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반해 연산군은 공길을 따로 불러 연극 놀이를 시키는 등 계속해서 공길에게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 두려움과 공포에 긴장했던 공길도 연산군의 순수한 의도를 알고 점점 놀이에 적극적으로 변모합니다. 장생은 이런 공길이 시답지 않습니다. 마치 양반에 몸을 팔고 왔던 모습이 떠올랐을 겁니다.

 

한창 광대들에게 마음을 치유한 연산군은 집무보던 중, 한 중신이 연산군에게 직언을 하며 광대들까지 들먹이자 이에 격분한 나머지 그를 궁 밖으로 내팽개치고는 광대들을 찾아서 가죽이 찢어지도록 북을 칩니다. 그리고는 공길을 찾아 자신이 직접 어린 날에 격은 어머니와의 일화를 연극합니다. 술에 취해 잠든 연산군을 가엾게 여긴 공길은 궁을 나가자는 장생에게 마지막 연극을 청합니다.

 

설득을 못 이긴 장생은 처선의 지시를 따라 중국 경극을 벌이면서 공길의 시나리오를 연극합니다. 이 극은 '패비 윤씨' 사건을 연상케 하는 경극이었습니다. 경극 내내 연산군의 표정은 굳어있습니다. 왕후로 분장한 공길이 사약을 받기 앞서 최후의 대사를 토해내자, 몰입하던 연산군이 별안간 자리에서 뛰어내려 가 공길을 끌어안고 어머니를 외칩니다. 극도로 흥분한 연산군은 선왕의 후궁들을 돌연 칼로 찔러 죽이고는 인수대비까지 밀쳐 급사시켜버리고 맙니다.

 

극을 할수록 감당치 못할 일들이 벌어지자, 연산군의 벼슬에도 궁을 떠나겠다며 간청하는 공길에게 녹수는 격하게 치욕을 주려합니다. 결국 벼슬을 받은 공길에게 장생에게마저 삐뚤어진 발언을 듣고는 둘의 사이가 틀어집니다. 중신들은 광대들이 궁을 어지럽혀 자신들의 입지마저 위태롭다 여기고 결국 사냥놀이를 빙자하여 그들을 처치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계획은 실패로 끝나면서 애꿎은 광대 동료인 육갑이의 목숨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연산군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공길을 불러들여 놀이에 매진하려 하지만 자신대신 죽은 육갑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공길은 자해를 시도합니다. 

 

녹수는 공길을 처치하기 위해 저잣거리에 떠도는 왕을 능욕한 벽서를 입수해 공길이에게 누명을 씌우기에 앞서지만, 장생이 자처해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며 공길을 보호합니다. 평생 옥살이를 할 처지가 된 장생은 처선의 도움으로 도망갈 기회를 얻었으나, 몰래 줄타기 놀이를 시작합니다. 연산군을 대놓고 저격하는 장생에게 연산군은 직접 활을 쏘며 그를 처치하려고 하자 줄에서 떨어진 장생을 잡아 눈을 파내라는 명령을 합니다. 

장생은 결국 양쪽 눈을 잃게 되고, 옥에 갇혀 버리고 맙니다. 연산군은 다시 연회를 열도록 지시하고, 공길의 부탁으로 장생과 마지막 줄타기 놀이를 펼칩니다. 이를 지그시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는 연산군, 그리고 그 옆에 차갑게 표정 짓고 있는 녹수에게 반정군이 들이닥쳐 피하라는 내시의 말도 무시한 채 줄타기 놀이만 응시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4. 지겨운 놈의 세상, 신나게 한 판 놀다 가면 그뿐.

영화를 보는 내내 드는 생각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왕이라고 칭하는 인물에 대한 강인함과 카리스마에 반해 너무나도 여린 속과 순수한 아픔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연산군은 어머니에 대한 비극적인 사건을 경험하고는 그리움을 잊지 못한 채 분노가 내재되어 있었고, 이것이 광대들로 하여금 분출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자 백성의 지아비로서의 책임감 보다 감정에 휩쓸리는 폭군으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에만 급급한 것을 보면, 광대들 보다도 더 광대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리메이크된다면, 연산군은 왕이 아닌 광대로 태어난 삶으로 각색을 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광대에게나 연산군에게나 이 영화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이 챕터의 제목대로 "지겨운 놈의 세상, 신나게 한 판 놀다 가면 그뿐."이라는 대사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반정군에 의해 결국 모두가 비극적 결말이 되겠지만, 연산군의 내면처럼 우리도 어릴 적 받은 영향들이 무의식으로 자라, 어른이 되어서까지 그 영향력 속에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단지 연산군은 그 성향을 분출할 수 있는 시대적 신분을 타고났을 뿐,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 또는 어떠한 음악을 듣고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바로 그 증거 아닐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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