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2008년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입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영화를 즐겨보신 한참 후라 신선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도 이 영화를 접한 지 꽤나 오래된 조금 더 어른이 된 시점에서 새로운 통찰을 갖고 이야기해보고자 이렇게 글을 씁니다.
1. 개요
나홍진 감독의 첫 장편 영화이며 희대의 사이코패스 살인마 유영철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국내에서 관심을 많이 받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고, 저 역시 대세의 흥미를 피할 수 는없었던 것 같습니다.
골목길 추격씬과 숨가쁜 화면전개 그리고 잔인한 살인 묘사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고어물까지는 아니지만 잔인한 장면이 다수 나오므로 비위가 약하신 분들께서는 시청에 주의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전에 다룬 <황해>에 비하면 아주 순한 맛입니다.)
2. 출연진
이번 영화 역시 하정우 배우가 등장합니다. 그렇고 보니 제가 본 영화 대다수가 하정우 배우가 주연을 맡은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배우임에 는 틀림없습니다. 상대 배우로 김윤석 배우가 나옵니다. 역시 <타짜>의 아귀 역할 이후로 정말 대단한 연기력을 보이며 국내 배우중 특히 '선이 굵은 배우'라고 불리는 송강호, 설경구, 안성기 등의 대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이 두배우는 영화 <황해>에서도 함께 호흡을 맞추었고, 훗날에는 <1987>이라는 영화에서도 호흡을 맞추어 보입니다. 여러 영화를 같이 하는 걸 보면 배우 간의 궁합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느껴집니다.
3. 줄거리
보도방을 운영하는 전직 형사 엄중호(김윤석)는 자신이 관리하는 매춘부들이 하나둘씩 사라짐에 이상함을 느낍니다. 그는 매춘부들이 자기에게 빌려간 돈을 갚지 않기 위해 잠수를 타거나 의도적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다 장부를 보고는 이상함을 느끼는데, 사라진 매춘부들이 전부 한 남자 '016-9265-4885'라는 전화를 마지막으로 사라진 것으로 확인되는 것이었습니다. 중호는 이 남자가 여자들을 팔아넘긴 것이라 확신하고 자신이 직접 잡으러 가기로 합니다.
마침 이 남자에게 성접대를 하러 간 매춘부는 어린 딸을 혼자 키우는 미진(서영희)이었습니다. 그녀는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포주 중호의 다그침에 하는 수 없이 어린 딸을 집에 두고 나선 것이었습니다. 중호는 미진에게 전화를 걸어 손님집으로 가게 되면 샤워하는 척 화장실로 가서 주소먼저 찍어보네라고 했습니다. 미진은 남자를 만났고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집 열쇠를 헤매는 등 이상한 행동들을 마주하지만 크게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들어가 화장실로 들어간 미진은 중호에게 주소를 문자메시지로 보내려 지난 통신 불량으로 실패합니다. 그런데 창문을 열어보니 벽돌로 막혀있습니다. 당황한 미진은 욕조에 걸터앉아 혼란스러워하다가 욕조 탈수구에 여자 머리카락이 잔뜩 뒤엉켜있는 것을 보고는 뭔가 잘못됨을 느낍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화장실을 나와 남자에게 콘돔을 가지러 차에 다녀오겠다고 기지를 발휘해 보지만 이미 현관문은 그가 자물쇠로 봉인해 둔 뒤였습니다.
중호는 미진에게 연락이 오질 않자 먼저 전화를 걸어보지만 통신 불량을 확인하고 그녀가 향한 동네를 직접 찾아 나서기 시작합니다.
미진은 이미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남자는 미진에게 사라진 여자들 이름을 읊어주며 본인이 자행한 것임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합니다. 미진은 잔뜩 겁을 먹은 상태로 결박되어 자신이 딸이 있으니 살려달라고 말합니다. 남자는 "너 하나쯤 죽어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그녀의 애원을 단호하게 외면합니다. 그는 망치와 정을 가지고 그녀의 머리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살해를 저지릅니다. 그녀의 저항에 손가락에 출혈이 생겼습니다.
그때 마침 남자의 집으로 어떤 노부부가 찾아옵니다. 이 노부부는 남자의 거처로 보였던 집에 살던 원래 집주인을 찾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남자는 냉소적으로 반응하지만 이내 그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죽여버립니다. 그리고는 노부부가 타고 온 차를 훔쳐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마침 그 동네를 뒤지고 있던 중호의 차와 골목길에서 접촉사고가 나는 기막힌 우연이 발생합니다. 중호는 남자의 수상쩍은 행동에 전직 형사의 직감이 발동하여 "4885, 너지?"라며 그를 자신이 찾던 그 남자임을 확신합니다. 남자는 도망치기 시작했고 중호는 긴긴 사투 끝에 남자를 직접 잡아 자신에 차에 태워 수갑을 채웁니다.
접촉사고 현장을 그대로 두고 달아난 탓에 신고를 받고 온 경찰들이 중호에게 상황을 묻는 과정에서 남자의 수갑을 보고는 중호의 신분을 확인합니다. 전직 형사였던 중호는 결국 지구대로 그 남자와 함께 동행하게 되었고 경찰은 형사를 사칭한 중호에게 책임을 묻기 시작합니다. 사투과정에서 남자의 얼굴이 폭행으로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경찰들은 그 죄를 되려 뒤집어 쓸까 불안했던 것입니다.
지구대 조사과정에서 남자의 이름은 지영민(하정우)이라고 밝힙니다. 영민은 경찰이 조사하는 와중에 핸드폰이 없다면서 자신의 번호 앞자리가 '016'이라고 말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석연찮은 신호를 감지합니다. 결국 경찰은 중호의 말대로 매춘부를 납치하여 팔아넘겼는지 묻자. 그는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죽였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날 서울시장의 유세과정에서 한 시민에 의해 시장이 피습을 당하면서 대외적으로 경찰의 의전에 대한 책임이 도마 위에 오른 상태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이 연쇄살인마라고 떠드는 영민을 엉겁결에 잡은 경찰은 이 기회를 분위기 반전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합니다.
중호는 저런 놈이 무슨 살인을 하냐며, 영민의 자백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 어떤 살인자가 자신이 범죄자임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중호가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한 논리였습니다. 난처한 상황이었던 경찰서장은 영민에 대한 보고를 받고 지구대까지 직접 찾아와 본인이 연쇄살인마라고 자백하는 영민을 연행합니다. 자백을 확실하게 받고 증거를 찾아내야 시장 의전에 대한 경찰 책임론이 도마 위에서 벗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호 역시 전직 형사 시절 동료였던 이 형사의 채근으로 경찰서로 향합니다. 중호는 자신의 보도방 직원 '오좆'에게 영민의 차에서 찾은 열쇠 꾸러미를 주며 핸드폰이 연결되지 않는 지하방 위주로 영민의 집을 찾아내라고 지시합니다. 중호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전직 동료에게 자신이 영민을 잡게 된 과정을 설명하지만, 경찰들은 모두 자신의 죄를 피하기 위해 정해진 질문만을 합니다.
한편 이 형사는 영민을 조사합니다. 살해 무기, 살해 방법 등을 묻자 너무나 의연하게 대답하는 영민을 보며 기이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살해 동기와 시체 처리를 묻자 횡설수설하기 시작합니다. 이 형사는 영민에게 분노하지만, 그를 잘 구슬려야 자백을 받아내고 자신들의 곤란한 상황을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습니다. 증거를 찾기 위해 과학수사대원과 함께 중호는 미진의 집으로 향합니다. 중호는 미진의 어린 딸을 혼자 둘 수 없어 결국 동행하기로합니다.
중호는 영민의 주소지로 향하는데, 그곳에는 누나와 매형이 살고 있습니다. 영민이 팔아넘겼다고 생각하는 여자들에게 빌려준 돈이 2천만 원이 넘는데 두 사람이 대신 갑으로 하고 각서를 쓰자고 합니다. 그때 방 안에서 한 어린아이가 나오는데 머리가 심하게 다쳐있었습니다. 영민의 누나의 말로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사이 아이가 이렇게 되어있었고 범인은 영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때부터 중호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직감합니다.
중호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 여러 보도방을 찾아다니며 같은 방식으로 사라진 여성들이 있는지 캐내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한 매춘부를 만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그녀의 이야기 역시 영민이 자신을 협박하고 잔인한 사진들을 보내곤 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미진의 딸은 자신의 엄마가 죽었을까 하는 두려움에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리고 중호의 직감이 거의 확신에 차기 시작합니다.
그때 오좆이 열쇠가 맞는 집을 찾아냈지만 그곳에는 미진이가 없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리를 뜨려던 찰나 웬 남자가 그 집으로 들어오려다 수상함을 느껴 난데없이 추격전이 시작됩니다. 중호는 그를 잡아서 추궁을 하였고 그가 영민과 교도소 동기였고, 한때 같이 살았던 적이 있음을 알아냅니다. 그리고는 말도 없이 사라졌고 며칠 뒤에 잠깐 나타난 영민이 망치와 정이 들어있는 공구가방을 들고 사라졌다는 말을 합니다. 중호는 영민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모든 정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집을 나서려고 하는데 미진의 딸이 없어졌습니다. 오좆을 다그치고 겨우 찾아낸 미진은 웬 골목에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있었습니다. 중호는 다급하게 응급실로 미진의 딸을 옮겼고 격분한 나머지 경찰서로 가 영민을 폭행하기 시작합니다. 경찰들은 그를 말리지 않았습니다. 살인을 자백한 영민이 시체를 처리한 장소에 대해서는 끝내 함구하고 있어 답답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가혹한 폭행 끝에 영민은 자백을 했고 중대급 경찰들이 투입된 곳은 한 석공장이었습니다. 중호는 영민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민을 직접 체포한 장소와 석공장이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상식적으로 시체를 옮길 수가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별안간 경찰들의 타깃이 중호가 되었습니다. 영민의 자백에도 성과가 없자 검사까지 나서서 영민을 무고한 시민으로 포장하고 그 얼굴을 망가뜨린 중호를 희생양으로 만들 심산이었던 것입니다.
중호는 난동 끝에 경찰에 잡히고 영민은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됩니다. 중호는 경찰에 연행되는 승합차에서 탈출하고 풀려난 영민을 좇기 시작합니다. 영민을 조사했던 경찰들 역시 영민의 뒤를 밟기 시작하는데 영민이 마침 담배가 떨어져 자신의 동네 가게에 갑니다. 가게 아주머니와 일면식이 있는 듯 인사하는 것을 보면 자주 이용하는 가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초조해하는 가게 아주머니에게 무슨 일인지 묻고는 자신이 죽이려 했던 미진이 도망쳐 나온 것을 확신합니다. 영민은 가게 아주머니까지 희생시키고 가게 방안에 숨어있던 미진을 끝내 죽여버립니다.
그의 뒤를 쫓던 경찰은 상황을 막지 못했고 중호 역시 이미 처참해진 현장을 보고는 이성의 끈을 놓아버립니다. 중호는 첫 피해자 부부가 다니던 교회를 찾게 되고 그 교회를 통해 영민의 거처를 알아냅니다. 영민은 죽은 미진의 머리를 잘라 어항 속에 넣고 감상하다 외출하려는 도중 중호와 마주칩니다. 난투극 끝에 영민을 끝장내려던 중호는 간발의 차이로 경찰의 저지로 살인을 저지르지는 못하고 상황이 종료됩니다. 그리고 그 거처의 마당에서는 영민이 희생시킨 수많은 시체들이 나왔으며, 경찰들 또한 애초 생각했던 사건 이상의 참혹함에 충격을 받은 듯 보입니다. 중호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미진의 딸을 돌보는 병실에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4. 선과 악의 기준을 가지고 노는 영화
우리는 오래전부터 선과 악을 잘 구분했습니다. 선하다는 것은 때 묻지 않고, 밝고, 명량하며 올바른 느낌을 줍니다. 반대로 악은 나쁜 것이며 위법적이고, 이기적인 것으로 화를 내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설정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주인공인 중호는 불법 보도방을 운영하며, 경찰을 사칭하고, 영민을 폭행하는 등 온갖 나쁜 짓을 다하는 사람이지만, 반대로 연쇄살인마를 혐오하고,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아이에게 보호자를 자처하고, 미진이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듣고 슬퍼하며 분개하는 등 매우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인물입니다. 영민은 경찰들 앞에서 순진하게 웃어 보이고, 조사과정에서는 나약한 인간처럼 중호의 폭행에 속절없이 맞기만 하며 자주 가는 가게 아주머니에게는 든든한 총각처럼 행세하지만, 그 뒷모습에는 자신의 심리적 욕구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도 죄책감하나 없이 행동하는 악마가 존재합니다.
감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선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마구 흔들어 놓는 설정으로 흥미를 돋구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미 알고있는 선악의 모습으로 두 주인공이 묘사되었다면 이 영화가 과연 흥행할 수 있었을까요. 그때 당시 어떤 관객이 영화를 평가한 구절이 아직도 머릿속에 기억이 납니다. "초반에 패를 보여주고도 끝날 때까지 패를 가지고 노는 영화"
5. 총감상평
당시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를 유도한 점은 분명하지만, 실제 살인마의 피의자들 기준에서는 절대 유쾌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상업적으로 소비해 버린 이야기이지만 그들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 이상일 것입니다. 영화는 감명 깊게 관객들을 사로잡았지만 우리는 이런 영화를 통해서 무언가 또 한 번 배워야 함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다시 나타날 지영민으로부터 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먼저 그들의 타깃이 된 '소외된 사람들(죽어 없어져도 모를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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